찰리 채플린 무성영화의 대표적인 인물

무성 영화의 대표적인 인물인 찰리 채플린은 영국의 배우, 코미디언 이자 영화 감독인 인물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찰리 채플린은 펑 퍼짐한 바지와 꽉 끼이는 상의로 그리고 그의 마스코트인 수염이 인상적인 캐릭터 배우입니다. 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스크린에 보여지는 모습이 친근한 동네 덜떨어진 아저씨 같은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많은 찬사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찰리 채플린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 찰리 채플린 영화와 그의 인생
  1. 찰리 채플린의 생애
  2. 찰리 채플린의 작품들
  3. 찰리 채플린의 인생관

1.찰리 채플린 생애

그는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찰스 스팬스 체플린 이고 1977년 스위스에서 생을 마칩니다. 왜 영국에 태어나서 활동은 미국에서 하고 인생의 마무리는 스위스 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앞으로 알게 될 것이지만 그의 삶은 성공과 투쟁으로 점철 되어 있으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 역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는 공연가 였습니다. 그는 1900년대 초 보드빌 연주자로 연예계에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음악당 코미디언으로 1910년 희극단에 합류하여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고 되었습니다.

그는 1914년 그곳에서 “Making a Living”으로 영화로 데뷔하게 되며 여기서 부터 1953년까지 그의 미국 생활은 성공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캐릭터의 모습은 두 번째 영화인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 였으며 이 캐릭터(트럼프)가 찰리 채플린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는 여러 영화 중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영화에 많이 참여 하였으며 특히 이 시기에 미국에서는 광신적인 반공주의를 뜻하는 메카시즘의 광풍이 불게 되었고 채플린 역시 이를 피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받으며 이런 문제로 미국에 재 입국이 거부되었습니다. 그 이후 스위스 브베로 이주하였으며 1957년 미국에 있지 않으면서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뉴욕의 왕’이라는 영화 한편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생을 브베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그 후 1972년 아카데미 명예상을 수상하기 위해 미국에 다시 입국을 하게 되는 것이 미국에 대한 마지막이 되어 버렸습니다.

2.찰리 채플린의 작품들

찰리 채플린은 그의 경력 전반에 걸쳐 많은 상징적인 영화를 만들었고 대표적으로 알려진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Kids(1921)는 부랑자가 버려진 아이를 발견하고 자신의 아이로 키우는 사람으로 나오는 영화 인데 이 영화 자체가 무성 영화 시대의 고전으로 간주되며 그의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 중 일부이기도 합니다.

City Light(1931)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영화에서는 꽃을 파는 장님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며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 획기적인 음악과 음향 효과를 사용한 것으로 유명해진 영화 입니다.

모던 타임즈(1936) 이 영화도 유명한 영화 중 하나 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산업화에 대한 대표적인 사회 비판 영화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기서 나오는 트럼프 캐릭터가 현대의 조립 라인과 투쟁을 하는 장면이 많이 묘사된 영화입니다

위대한 독재자(1940)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그 것에 대한 독재자를 조롱하는 정치적 풍자 영화입니다. 유럽에서 파시즘의 부상으로 이런 내용을 채플린 영화에서 사용하였으며 이 영화에서는 독재자로 오인 되는 유대인 이발사와 독재자 자신의 두 가지 역활을 채플린이 담당하게 됩니다.

라임라이트(1952) 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미국에서 영국으로 갔다가 미국에서 재 입국이 거부되어 다시는 미국에 가지 못하게 한 영화 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노화된 음악에 관한 드라마이며 젊은 대서와 친구가 되는 홀 퍼포머로 영화 산업의 노후화에 대한 채플린 자신의 투쟁을 반영한 자전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영화들은 채플린 영화 중 가장 혁신적이고 영향력이 있는 작품들 중 일부이며 우리에게 알려진 영화들입니다. 실제 찰리 채플린은 무성 영화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배우이지만 우리는 그냥 그가 재미있는 코미디언 정도라고 생각 하신 분들도 많으실 거라 느껴집니다.

3.찰리 채플린의 인생관

찰리 채플린은 빠르게 성장한 헐리우드 배우 중 한 분 이지만 그의 개인적인 삶은 너무나 파란만장 하다고 해야 될 정도로 네 번의 결혼과 수많은 불륜 자녀들과의 불화 등 수많은 문제와 늘 부딪혔으며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활동이 정치적인 부분이 많이 내포되어 그로 인해 미국에서 공산주의 반대 운동에 고발 당하기도 하였으며 입국이 거부되어 더 이상 미국에 입국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계속적으로 획기적인 영화를 제작 하였으며 그로 인한 영화계 전체의 수많은 찬사를 받았고 그의 공헌에 현재까지 기념 되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피지컬 코미디와 파토스 등 사회적 논평을 혼합하는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트럼프(우리가 알고 있는 채플린의 대표적인 인물)라는 캐릭터는 엉뚱하고 하지만 사랑스러운 인물로 채플린에 의해 탄생 된 인물입니다. 채플린의 영화는 유머와 드라마가 혼합되어 있고 그의 연기를 통해 복잡한 여러가지 감정들도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다양한 감정 표현을 하는 능력이 뛰어 났으며, 그의 피지컬 코미디는 유쾌하면서 통렬 했습니다.

그는 무성 영화라는 장르에서 자신의 낮선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을 웃기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끔 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찰리 채플린의 인생관을 논할 수 있지는 못하지만 그의 인생에 잘된 행동이니, 잘못된 행동이니 라는 판단을 내려주는 것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현재가 이런 분들로 인해 생성되었고 문화의 발전도 이루어 졌기에 이 분들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지금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지만 지금 찰리 채플린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힘들게 영화를 제작하고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시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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