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적인 팝 그룹 비틀즈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비틀즈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성공 비결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과연 그들의 음악성만 좋아서 일까요? 아니면 뭔가 우리들을 사로잡을 만한 무언가가 있어서 인가요? 비틀즈가 성공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음악성도 아주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한 이들이 있었기에 이 세계적인 팝 그룹이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부터 비틀즈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 놓을 수 있게 만든 5번째 멤버에 대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글의 목차

세계적인 팝 그룹 비틀즈
세계적인 그룹 비틀즈는 대중음악에 큰 영향을 준 록 밴드입니다. 1960년 부터 1970년까지 활동을 한 매우 영향력이 있는 영국의 록 밴드입니다. 이 그룹은 록 음악 발전의 선구자 였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시대와 그 이후의 대중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그룹에는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의 4명의 맴버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로큰롤, 팝, 포크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를 혼합했고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한 그룹입니다. 비틀즈의 음악과 스타일은 전 세계 팬들과 음악가들에게 의해 지속적으로 기념 되고 연구되고 있으며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있고 지속적인 밴드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비틀즈 5번째 명예 멤버 브라이언 엡스타인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이 그룹의 5번째 멤버가 있다면 그건 바로 브라이언일 것이다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브라이언은 비틀즈를 현재까지 유명하게 만든 인물입니다. 브라이언 역시 리버풀 출신 이였으며 이들의 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1961년 어느 날 소년 밴드의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았으며 그들의 잠재력을 알아차린 인물입니다. 그들에게 매니저가 없고 매니저를 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들의 매니저가 되어 줍니다. 그는 그들을 철저하게 그들이 스타일과 행동을 자제 시키며 지금의 스타일로 유지 시켜준 인물이며 그들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처음 데모 테잎을 들고 수많은 음반사를 찾아가서 퇴짜를 맞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결과로 영국의 유명한 EMI 음반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비틀즈를 정상 위치에 올려준 조지 마틴을 만나게 됩니다.
이후 이 그룹은 세계 정상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는 이들의 최초 매니저이자 비틀즈의 모든 스타일을 관리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폴 메카트니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제 5의 비틀즈가 있다면 그건 바로 브라이언일 것이다.” 그리고 음반 회사 EMI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 역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가 나에게 그들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나는 그들을 레코딩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스타일을 줬다. 그는 그들에게 취향을 보여 주었고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매력과 옷차림에 있어서 흠잡을 데 없는 것을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 옷을 입히는 데 있어서 상당히 엄격했다. 그는 공연이 끝날 때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도록 시켰다. 브라이언이 그걸 다 줬다. 그는 소중한 사람이었고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브라이언은 이렇게 이 그룹을 최고의 슈퍼스타로 만들고 이후 이들의 사업적인 면에 집중 하였고 음악적인 면에서는 더 이상 그들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악적인 판단은 조지 마틴을 신뢰 하였으며 음악적인 방향에 대해서도 더 이상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967년 8월 과도한 약물과 마약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죽기 전까지 비틀즈에 대한 애증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이 그룹은 많이 흔들렸었다. 하지만 또 다른 5번째 멤버로 인해 비틀즈는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우리가 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된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들을 연구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들의 재능이 없었더라면 그는 매니징 할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브라이언이 없었다면 우리 중 누구도 비틀즈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오늘의 비틀즈를 위대한 길로 이끌어준 매니저이자 그들의 형이 되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비틀즈의 5번째 맴버 조지 마틴

위 사진에서 보이는 건널목을 건너는 이들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곳은 영국의 애비 로드입니다. 이곳은 영국의 런던에 위치한 곳이며 세계적인 음반 회사 EMI 스튜디오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위대한 5번째 멤버인 조지 마틴은 프로듀서 겸 EMI 산하 서브 레이블인 ‘팔로폰’의 대표로 일하고 있던 곳입니다. 조지 마틴은 1962년 신인 밴드의 데모 테잎을 접하게 되고 그들에게 오디션을 제한한 인물이며 1962년 6월 6일 애비 로드의 스튜디오에서 이들과 오디션을 하고 즉시 계약을 제안합니다.
조지 마틴의 회고록에 “듣자마자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연락을 취했죠. 당시 제 나이는 36살, 그 친구들은 저보다 평균 16살 젊었죠. 아버지 같은 느낌보다는 큰 형처럼 다가갔어요. 통찰력이랄까, 상호 그런 게 있어서 나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지 마틴은 계약에 앞서 조건을 제시 했습니다. 밴드의 멤버 중 드럼 연주자인 피트 베스트는 교체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유는 연주 실력과 외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의 링고 스타가 탄생 하게 된 것입니다. 계약 후 그해 10월에 발표한 “Love Me Do”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었고 다음 해 1월에 발표한 두 번째 싱글 “Please Please Me” 는 1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 밴드가 미국에 진출하는 모든 것을 조지 마틴이 이루어 줬으며 그들을 세계 정상으로 올려 놓은 인물도 조지 마틴의 역활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음악적으로 감각이 뛰어난 조지 마틴은 이들의 멤버 대부분이 열정이 강하고 자질이 풍부한 것을 파악하고 그외의 음악적 디테일한 부분을 잘 챙겼습니다. 어느 곡에 따라서는 자신이 직접 건반 연주한 부분을 삽입하기도 하면서 실제 음악적인 부분까지 포함된 제 5의 멤버라고 부르게 된 것 이기도 합니다. 너무 인기가 많아 지고 좋아진 만큼 밴드 내 불화도 생기게 되었고 해체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밴드는 해체 직전에 마지막 녹음도 조지 마틴과 함께 하였습니다. 안타깝게 그들은 헤어졌지만 그들의 음악은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명곡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정확히 보고 성장 시켜준 그는 진정한 5번째 멤버였습니다.

이 밴드는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멤버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이지만 그들을 세계 정상으로 만들어 준 인물들이 있었기에 현재 사람들이 비틀즈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비틀즈 5번째 멤버라고 말한다.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조지 마틴이 없었다면 지금의 비틀즈를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음악적 열정과 음악성이 좋았지만 그 음악을 더욱더 빛나게 해준 5의 멤버가 있음으로 더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모든 일들이 그렇다 우리 자신을 빛나게 만들어 줄 위인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의 삶도 바뀌지 않을까. 단 우리도 비틀즈 만큼의 열정이 필요할 것이다.
함께 하면 좋은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