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울적하면 이웃집 토토로를 봐라 그러면 2번은 웃게 될것이다

이웃집 토토로를 본 적이 있나요? 방영된 지 오래된 만화 영화이지만 전 최근에 봤습니다. 왠지 모르게 한번 보고 싶어지더군요.

지브리 스튜디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느끼게 하고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 스포가 될 수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보셨다면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하고 그런 향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하지만 어른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글의 순서


이웃집 토토로를 통해 알게 된 향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1988)’는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요정이 나오는 모험담이지만 어른의 시선으로 다시 보면 상실의 불안, 삶의 무게, 그리고 잊혀진 것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배어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1950년대 후반 일본의 시골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고도 성장이 시작되기 전 인간과 자연이 공존했던 마지막 시기를 그려낸 작품인데 이 영화에 나오는 배경들 흙냄새, 오래된 나무, 맑은 개울 등은 현대 도시 생활에 지친 어른들에게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자극합니다.

일본만큼 많은 신을 모시는 나라는 드물지만 이 영화에서도 그런 부분이 잘 나타나져 있습니다. 특히 나무와 숲에도 영혼이 있다는 신토적 세계관이 있는데 여기에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경외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바로 보게 합니다.

낭만이 아닌 결핍에서 시작되는 현실적인 판타지

이웃집 토토로에서 어른들이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배경이 ‘불안’ 이라는 점입니다. 사츠키(언니)와 메이(동생)가 낡은 시골 집으로 이사 온 이유는 어머니의 투병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웃음 뒤에는 언제나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묵직한 공포를 가지고 있죠.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토토로는 아이들이 가장 불안하고 외로운 순간에만 나타납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토토로는 단순한 요정이 아니라 감당하기 힘든 현실의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아이들이 만들어낸 심리적 방어 기재이자 위로의 형상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보통 이 영화에서 동생 메이의 귀여움에 집중할 수 있지만 어른이 되어서 보는 눈은 언니인 시츠키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고작 초등학생인 사츠키는 아픈 엄마와 바쁜 아빠를 대신해 가장 역활을 수행합니다. 도시락을 싸고 동생을 돌보며 두려움을 나타내려 하지 않으려 애쓰는 게 표현되죠. 영화 후반부에 사츠키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무너지는 장면을 통해 많은 어른들을 울리기도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나 다른 판타지 영화와는 달리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토토로는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지도 않고 아버지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씨앗을 틔워주거나 잠시 하늘을 날게 해주거나 고양이 버스를 불러주는 것 외에는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위로를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위로는 문제를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게 곁에 있어 주는 것임을 토토로는 보여주죠.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이웃집 토토로’는 귀여운 캐릭터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지를 보여주는 대견한 드라마이자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자연에 보내는 아름다운 러브레터 같은 영화입니다.

이웃집 토토로는 어른들의 희망이자 사랑

지금 이 시점에서 만난 이웃집 토토로가 주는 감동의 핵심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때 오는 먹먹함에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아빠에게서 이런 내용을 많이 느끼게 합니다.

아이들이 “토토로를 봤어!” 라고 말할 때 주인공의 아빠는 “꿈을 꿨구나” 혹은 “거짓말 마” 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숲의 주인과 만난 거란다. 그건 아주 운이 좋은 거야.”며 아이들의 세계관을 온전히 존중하고 지켜줍니다.

그리고 영화 속 토토로는 사츠키와 메이가 가장 힘들고 지쳤을 때만 나타납니다. 하지만 토토로는 훈계를 하거나 대단한 교훈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비 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혹은 잠든 아이들 곁에서 토토로는 그저 거대한 털복숭이 몸으로 묵묵히 곁을 지켜줍니다.

그리고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 위안이 됩니다. 사회생활에 치여 늘 성과를 내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어른들에게 그냥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주는 위로는 엄청납니다. 아무 말 없이 우산을 씌워주는 그 장면에서 우리들은 깊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는 이웃집 토토로

영화의 엔딩에서 아이들은 토토로를 보지만 엄마와 아빠는 토토로가 있는 나무를 보며 “아이들이 저기 있나 봐요.”라고 웃을 뿐 토토로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압니다. 사츠키와 메이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더 이상 토토로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우리가 지나온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순수했던 시절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와 같습니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 시켜 주는 영화이죠.

결국 ‘이웃집 토토로’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회복’입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잊고 지냈던 순수함, 가족의 사랑,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다시금 꺼내어 닦아주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 합니다.

“당신에게도 토토로가 있었어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당시 마음 깊은 곳 숲 속에 살고 있습니다.”

관련 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우리가 몰랐던 3가지

Leave a Comment